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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

글쓴이 : 부목사 날짜 : 2017-09-12 (화) 10:58 조회 : 635
카톨릭으로 부터 분리되어 개신교(교회)가 생겨 난지 5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로마 카톨릭의 부패와 죄로부터 새롭게 성결함과 예수님의 뜻을 진실하게 받아드려 그 뜻대로 이루고자하는 하는 이 종교개혁은 로늘 이 시대에 기독교인에게 가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다. 우리는 500년 전의 카톨릭 보다 더 낳은 것이 있는지를 살려 보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몇 주에 걸쳐 종교 개혁의 의미를 뒤돌아 본다.

  프레드릭 4세는 로마 천주교로부터 파문을 당하게 되었을 때 황제 찰스 5세도 루터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1521년 보름스(Worms)국회에서 이런 황제의 선언 속에서 그는 마지막 최후 진술을 합니다.” 하나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도우소서 

 종교개혁일은 1517년 10월 31일에 독일의 마틴 루터 (Martin Luther, 1483-1546)가 당시 카토릭 교권의 타락과 부패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전통과 관습으로 일관된 중세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신앙개혁 운동을 일으킨 날입니다. 2017년 10월 31일이 되면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독일 북부 비텐베르그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지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루터의 종교개혁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 (Back to the Scripture)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는 늘 새롭게 개혁 (Reformation)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이 날을 기념하는 이유 또한 과거의 인본주의 신앙의 잘못된 모습을 버리고 새로운 부흥과 회개(Revival and Repent), 갱신과 회복(Renewal and Recover)의 기회로 삼자는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종교개혁은 변질된 기독인과 교회의 신앙과 교회로부터 성경본래 기독교로의 회복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 최초의 개혁사건이었던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은 성전수리중 발견된 모세의 율법에서 시작했습니다. 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하며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이 갖는 가장 우선적인 의미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교회가 정경을 결정하기에 교회권위가 성경권위보다 우선한다는 논리에 맞서서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의 전통보다 우선이며 오직 성경위에 신앙의 표준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관한 바른 인식을 갖고 사제들만이 아니라 함께 만인들이 성경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개방시킨 것이 종교개혁의 근본의도요 내용이었습니다.

 종교개혁가들은 가톨릭 예전에 대하여 3가지 중요한 입장 견지
a.중세의 예배에 대한 신학은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의 반복 혹은 재현으로 보는 경향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로마 가톨릭 미사에서는 성찬 성례전을 미사의 절대적인 구심점으로 진행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톨릭 교회의 예배신학에 종교 개혁가들은 기독교 예배는 원래부터 말씀의 예전과 성찬 예전이 두 축이 되어 있었기에 모두가 동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b.가톨릭교회가 지켜온 화체설입니다. 이것은 봉헌된 성물 (Bread and Cup)을 앞에 두고 성령임재를 위한 기도 (Epiclesis)를 드리면 성물이 거룩한 변화를 일으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교리입니다. 그 당시 화체설의 영향을 받은 교인들은 성찬을 받는 사람들의 믿음이 없이도 집래한 성물을 보기만 해도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c.개혁자들은 말씀의 선포인 설교의 위치를 초대 교회부터 가지고 있던 본래 위치로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말씀회복을 위하여 성경이 라틴어로만 고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져야 하고 설교가 회중들의 언어로 전달되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실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었습니다.

  루터에 이어 칼빈과 쯔빙글리, 요한웨슬리와 같은 종교 개혁가들은 가톨릭 교회안의 균형을 잃어버린 예전의 회복을 위해 말씀선포에 두고 성찬에 있어서 성체 공재 설 (Consubstantiation), 영적 임재설 (Spiritual presence)을 가르치고 회중중심의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가 먹는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님의 몸과 피라고 믿는 가톨릭의 화체설과는 비교적으로 마틴 루터는 천주교교리에 대하여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며 예수님의 육체가 빵 속에 있고 예수님의 피가 포도주 속에 있는 것이지 빵과 포도주가 변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후에 쯔빙글리와 요한 웨슬리는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임재 하는 것이지 빵과 포도주의 본체가 변화된 것이 아니라는 영적 임재설 (Spiritual Presence)을 믿게 됩니다. 요한 웨슬리는 성찬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죄를 거부하고 그의 형상대로 우리의 영혼을 재생시키도록 돕기 위하여 그의 은총을 보내주는 방편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은 예전의식과 제도에 신학을 반영함으로 종교개혁이후 예전의식과 더불어 예배당양식에도 변화가 오게 됩니다. 특별히 개신교 예배당에서는 강단이 중심에 위치하게 되었고 성찬대는 그 밑에 두게 됩니다. 의식중심에서 말씀중심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개신교는 그러므로 말씀이 중심이 되는 개혁교회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사람 (Leader)의 회복입니다.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운동은 ‘교회개혁’이란 말이 더 정확하다고 말할 정도로 종교개혁자들의 가장 주된 관심은 ‘하나님의 교회’였습니다. 교회 변질의 시작은 ‘섬김과 봉사의 직분’이 ‘종교적인 권위주의’로 계급화 되면서 변질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회복은 하나님 중심이라는 말에 대한 바른 이해를 전제로 합니다. 즉 교황(인간)이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할 수 없고 사람이 영광 받아야 할 대상일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은총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행위로 얻어지는 공로의 결과라는 변질된 구원관은 기독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왜곡하게 된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재확인 한 것이 교회개혁운동이 가져온 신학적인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평신도사역의 재발견입니다. 마틴루터가 만인 사제설을 주장했듯이 평신도의 전문성을 활용하고 그들의 역할을 다시 조명하고 발견하여 평신도를 사역의 동역자로 동력화 하고 세워나간 것입니다.

  셋째는 선교적 사명(Mission)의 회복입니다. 
  1999년 10월 31일에 로마 카톨릭교회는 16세기와는 다르게 마틴루터’Sola Fide'(오직 믿음으로만)의 사상을 수용하면서 루터교회와 공동으로 칭의론(Justification)에 대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는 죄인이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의롭게 된다고 하는 것을 함께 고백한다. 이 구원은 그 죄인에게 세례 가운데서 성령에 의해 그의 전 그리스도교적 삶의 기반으로서 주어진다. 하나님을 향한 소망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그 안에 포괄되어 있는 곧 의롭게 하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을 신뢰한다. 이 의롭게 하는 믿음이 사랑 안에서 역사한다. 따라서 행위없는 그리스도인이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인간 안에서 믿음의 자유로운 선물에 앞서가고 뒤따르는 모든 것은 칭의에 대한 근거가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칭의라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아예 공로를 치루고 획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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